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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문화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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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MYANMAR)의 문화

롱지(Loungyi)문화
미얀마 시내에서 흔히 볼수있는 광경은 남자들이 그들의 전통복장인 롱지(Loungyi)라는 치마를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이 론지는 그들에게 있어서 문화이며 자부심으로 학교관공서등에서는 유니폼으로 사용하고 롱지의 색과 문양으로 그들의 신분 직업을 알수 있게한다.

불탑문화
미얀마에서 쉐다곤 파고다 처럼 100m 가까운 높은 탑을 보고 외국인들은 매우 놀란다. 이불탑은 이들의 정신적인 의지처이다. 이러한 불탑에는 사람들이 들어갈수 있는 곳을 '퍼토'라고 하고 사람들이 들어갈수 없고 사리나 불교상징물을 보관하는 장소를 '제디'라고 한다. 옛날에는 승려들은 탑의 높은 부분까지 가서 정진 수련을 하였다고하나 현재는 승려들의 거쳐는 '풍지짜웅'이라하여 불탑 외부에 따로 있다.

미얀마 불교문화의 형성 배경
남인도 상인들이 오랫동안 미얀마 남부 몽족들과 왕래하여 온 탓에 미얀마의 종교, 문학, 건축, 공예, 연극 등 문화적인 면에서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상대적으로 중국은 운남성의 중국변방의 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었으나 중국 중앙부의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미얀마는 인도불교 상좌부 불교가 5세기에 인도 및 스리랑카로부터 남부 미얀마 몽족(Mon)에게 전해졌다. 미얀마 사람들은 출생부터 사망까지, 예를 들면 아이가 태어나 이름 짓는 것부터 시작하여 교육, 결혼, 장례식까지 모두 승려들과 상의 한다. 이처럼 불교는 미얀마 사람들의 사상 및 행동면에서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교의 하안거( 夏安去)에 해당하는 7월 중순부터 10월중순 까지 3개월간은 금식기(Lenten Season)를 갖는데 이 기간동안에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다. 또한 매달 4일간 있는 금식일에는 휴교를 하고(기독교의 주일처럼) 독실한 불교신자들은 정오부터 다음날 일출 때 까지 금식을 하는 등 종교의식을 거행한다.

물축제 (Thingyan(Elswis) Water Festival)
물축제가 있는 4월 둘째, 셋째 주는 미얀마 최대의 축제기간이다. 관공서, 기업, 은행, 상점이 모두 문을 닫고 짧게는 7일 길게는 14일까지 시민들이 모두가 거리로 나와 물을 뿌리며 축제를 즐긴다. (유의: 비즈니스목적으로 방문한다면, 이시기는 피하여야 한다. 비즈니스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얀마 사람들은 이 물축제를 위해 1년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잔(Thagyan)으로도 불리는 이기간은 미얀마 최대의 연휴기간이자 우리에 설날과 같은 송년, 신년 축제 기간으로 어느 누구에게나 물을 뿌릴수 있고 물세례를 받는 사람도 즐거워한다. 물을 뿌리는 의미는 가장 더운시기에 더위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묵은해에 행했던 나쁜 일들을 씻어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약속 및 선물 / 식사 문화
약속 :
약속시간에 대한 관념은 정확하지 않아 30분이상 특제 나타나는 일이 다반사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1시간이 지난후에야 연락이 와서 급한 용무가 있어 만날수 없다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계의 경우 시간을 지키는 편이다. 반면 외국인에 대해서는 시간엄수를 당연시 한다.

식사:
미얀마인을 식사에 초대할 경우, 메뉴 선정에 신경써야 한다. 대부분의 미얀마인이 종교 및 관습의 영향으로 소고기를 먹지 않으며 일부는 돼지고기 또한 먹지 않는다. 따라서 가장 무난한 메뉴는 닭고기와 생선으로 구성된 요리이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식당에서의 바이어 접대도 좋다. 돼지고기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쌈장, 상추, 돼지불고기를 권할만 하다. 술은 맥주 또는 위스키가 일반적이며 현지 맥주로는 미얀마 비어가 가장 유명하다. 개인차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많은 양의 술은 마시지 않는 편이다.

선물:
지인이나 바이어에게 전달할 선물을 사전에 준비해가는 것이 좋지만, 고가의 선물 또는 기념품은 오히려 부담감을 줄 우려가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인삼 제품이 널리 알려져 있어 인삼 캡슐, 홍삼 절편 등의 선물이 좋으며, 손목시계, 탁상용 소품, 위스키등도 바람직하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음반 cd, 한국영화 및 드라라 dvd 등도 좋은 선물이 될수 있다.

미얀마의 천연화장품
천연화장품에 놀라지 말라. 미얀마를 처음 방문하여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남녀노수 모두 얼굴에 황색의 무엇인가를 바르고 다니는 것을 볼수 있다. 바로 미얀마 특산품인 '타나카' 라는 천연화장품이다. 타나카는 미얀마 중북구 건조한 기후에서 자라는 타나카 나무껍질에서 추출되며, 약 2,000년전 미얀마 땅에 있었던 고대국가인 베익따노 왕국에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타나카는 보통 타나카 나무를 잘라 돌판에 물을 뿌리며 껍질을 갈아서 사용하는데 강렬한 직사광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 주고 미백효과와 함께 피부를 부드럽게 해준다. 또한 모공 수축과 피부 살균효과로 피부 트러블 치료에도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미얀마의 복장
미얀마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공식 행사와 평상시 모두 론지에 슬리퍼를 착용한다. 연중 무더운 곳이기 때문에 양복바지에 반팔 와이셔츠, 노타이 차림이 무난하다. 다만 공무원을 만날 경우 넥타이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양복과 넥타이의 경우 특별히 호감을 주거나 불쾌감을 주는 색깔은 없다.

다문화국가 미얀마
미얀마의 문화가 매우 복잡한 것은 다민족 국가라는 것이다. 소수민족에서도 분파가 갈라져 약 135개의 소수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
미얀마의 주류는 70%를 차지하고 있는 버마족이다.
소수민족으로는 샨족(중국 접경지 거주 9%)
카렌족( 태국 접경지역 7%)
카친족(인도접경지역 약 110만명)
친족(인도/방글라데시 접경지역 약 60만)
중국계(3%)
인도계(2%)

미얀마는 전통적인 소승불교문화가 일반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카렌족, 카친족, 킨족은 영국식민지의 정책영향으로 기독교를 수용하고 있고, 일부 종족은 이슬람교를 믿기도 한다. 미얀마와 관련된 국제적인 관심은 미얀마의 소수민족 자결권 및 독립투쟁보다 군사독재정권 아래의 민주화운동과 인권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소수민족의 문제는 거시적인 측면과 미시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어 양면적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풀리는 문제로 남아있다. 요컨데 미얀마 내분이라는 분쟁은 정치적 측면에서 민주화운동과 민족 및 종교적 측면까지 소수민족 갈등문제로 혼합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얀마(MYANMAR)의 역사

석기시대
5천년전 에야워디 강에 아냐띠얀족이 거주함.
역사시대
중국의 역사문헌에 의하면 미얀마의 국명은 시대마다 다르게 표기 되었다.
당나라에서는 표(驃)국으로
송나라에서는 포감(蒲甘)국
원나라에서는 면(緬)국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는 면전(緬甸)국의로 기록되었다.

몽족시대(1세기 초)
1세기 초기에 몽족이 싯따강 하류지방에 정착하여, 인도에서 농업기술과 힌두교, 불교를 전수 받았다. 6세기에 현재 미얀마 하부에 뚜원나부미(황금의 땅)라는 국가를 건설하였다.

버마족의 출현(1~8세기)
버마족의 조상인 표족(驃族)도 몽족과 같은 시기에 이곳에 정착하여 800년경에 미얀마 중·북부에 베익따노, 한건, 뜨예켓뜨야 등의 도시왕국을 건설했다.

버간왕조(11세기)
버마족은 11세기가 되면서 에야워디강 중류에 버간왕조를 세워 남쪽의 몽족지역, 샨족의 고원지역 까지지배하게 되었다.

몽고군의 침략(1287년)
1287년 몽고군이 침략하여 버간왕조는 멸망하였다.

따웅우 왕조(16세기)
버마족은 타이계 샨족, 타이족의 침입을 물리치고 16세기에 싯따웅강 중류지역에 따웅우 왕조를 세웠다. 이왕조는 몽족을 물리치고, 1755년 에야위디강 삼각주로 진출하여 몽족을 정벌하고 당시 터공이라 불리던 도시를 랑군(전쟁의 끝: 지금의 양곤)으로 개명하고 수도로 정하였다.

영국의 식민지시대(1885년~1940년)
아시아로 진출한 영국과 3차례 전쟁(1824~1826, 1852, 1885)에서 패하여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영국의 인도인을 미얀마 에야위디강과 싯따웅강의 삼각주에서 벼농사를 개발하여 1930년데에 세계최대의 수출용 벼농사지대를 만들었다. 미얀마는 세게 제1의 쌀 수출국이 되었다.

버마연방탄생(1948년)
2차 대전 이후 일본군이 퇴각하자 재 침입한 영국과 합의끝에 1948년1월4일 버마연방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독립영웅 아웅산이 독립을 목전에 앞두고 정적인 우쏘에게 피살 당함으로서 미얀마는 지도력의 공백을 초래하게 되었다.

우누총리시대(1948~1962년)
지도력의 공백으로 우누 총리시절에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1946년 赤旗공산당, 1948년 미얀마공산당의 반란이 있었고, 1949년 까렌족이 독립을 요구하면 반란을 일으켰다.

네윈(Ne Win)시대(1962~1988)
1962년3월2일 네윈장군은 미얀마군을 이끌고 군사구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곧바로 혁명평의회(,Revolutionary Council)조직하여 군간부 장당인 버마사회주의 계획당(BSPP)을 조직하여 국권을 장악하였다.

신권부등장(1988~2015년)
1987년 미곡가격의 상승으로 경제가 파탄하자 1988년3월, 6월, 8월 민주화 요구 시위를 진압한 쏘마웅( Saw Maung)을 수반으로한 국가법질서회복 평의회(SLORC)를 출법시켰다.

아웅산 수지 선거 승리(1990)
아웅산수지(Aung San Suu Kyi)가 이끄는 국민민주연합(NLD)가 1990년 선거에서 의회의석 465석중 392석을 차지하고 대승을 거두었으나 SLORC은 의회구성을 승락하지 않았다. 1992년 땅쒜(Than Shwe)국 국가권력을 승계하였다.

아웅산 수지 다시 선거 승리(2015,11,8)
최근 다시 아웅산수지가 총선에 승리하였다. 현지 언론과 외신들은"지난 8일 치러진 미얀마 총선개표가 진행중인 가운데 수지여사의 NLD가 군부가 만든 집권당인 통합 단결 발전당(USDP)를 큰차이로 압승했다는 결과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라고 하여 미얀마의 민주화를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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