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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베트남 호치민시티로~
글쓴이 위더스관광 첨부파일 -
작성일 2016-02-06 오후 4:06:43 조회수 1802
베트남 호치민시티(1998, 2000)
호지민시티로(1998)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국제선 공항청사, 비용절약을 위해 단체 티켓을 신청했기 때문에 티켓을 받으려고 출장 나온 여행사 직원을 찾고 있을 때,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한 여인이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짐이 그 가방 하나뿐이에요?” 돌아보니 진지한 얼굴을 한 여인이 무거운 짐을 옆에 놓고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 “그런데 왜 그러세요?” 나는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여인은 나에게 짐을 부탁하는 대신 호치민시티의 숙소 제공을 제의했다. 뜻밖의 제의라 한 동안 그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데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에 어딘가 모르게 초조한 기색이 보였다. 그래서 자세한 내막을 물으니 대전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베트남 공장에 원단을 보내려고 공항에 나왔다고 했다. 가끔 이렇게 부탁해서 짐을 보냈는데 그날은 인편을 찾지 못해서 걱정을 하고 있던 중에 나를 만났다고 했다. 부탁을 거절 할 수가 없었다.
한여름의 해가 열기를 내리면서 서산에 걸릴 무렵 비행기는 베트남으로 향했다. 4시간 50여분의 비행 끝에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호치민시티의 탄손낫트 국제공항에 내렸다. 지난날에는 동양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호치민시티의 공항의 분위기를 보는 순간 아쉬움이 피부에 와 닿았다. 옛날의 사이공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공항을 나오니 이미 연락이 되어서 그곳 공장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이곳에서 가장 흔한 대중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의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자정이 지난 시간에 호치민 시티의 밤거리를 달려서 숙소에 왔다. 어둠속의 야자나무 가로수들이 남국에 와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여로의 피로가 몰려오는 가운데 호치민에서의 첫 밤에 젖어들었다.
 
호치민시티 시내 탐방
아침의 햇살이 방안으로 스며들었다. 오늘의 일정은 호치민 시티의 시내탐방이다. 숙소를 나서니 아직도 이른 아침인데 거리는 벌써 오토바이행렬로 가득 메워졌다. 자동차는 중앙선을 넘나들면서 오토바이들을 피해가며 조심스럽게 운행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자전거, 특별히 제작된 세발자전거, 자동자 등이 한테 어우러져서 이동하고 있지만 거리는 크게 막힘없이 소통되었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탄 사람이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면 자동차들이 기다려주는 풍경은 혼잡스러운 거리를 소통시켜주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듯했다. 빨갛고 아담한 오토바이 위에 노출을 부추기는 듯한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은 예쁜 아가씨들의 모습을 복잡한 거리에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호지민시티의 거리는 향수의 거리었다. 퇴색한 옛날 건물 사이로 초현대식 건물들이 구색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물결은 베트남의 내일을 약속해 주는 활력 같았다. 바쁘게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보다 나은 내일을 건설해 보려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간간히 눈에 띠는 호치민 동상, 관공서 중앙에 큼직하게 걸려 있는 호치민 초상화가 이곳의 정치체제가 사회주의임을 말해 주고 있지만 시민들의 생활 모습은 자유분방하기만 했다. 시장의 모습, 거리의 노점상, 손님을 찾기 위해 목을 길게 빼고 있는 오터바이 기사들, 세발자전거 기사들 등 자유주의 사회상 그대로였다.
식당에서의 일이다. 종업원이 식탁 위에 슬그머니 가져다 둔 물수건을 서비스인 줄 알고 사용했더니 식대 계산서에 올라 있어서 요금을 지불해야 했고, 또 거리의 간이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컵에다 물같이 보이는 것을 가져다 놓기에 마시려고 맛을 보니 술맛이 났지만 억지로 마셨는데 알고 보니 그것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
호치민시티는 다양성을 가진 도시이면서도 교훈적인 도시이기도 했다. 인민의사당에서 느낄 수 있는 독립의지, 호치민 박물관에서 풍겨 나오는 국민을 하나 되게 하는 강인한 의지, 거리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 등이 있었다.
특별히 관심을  끌었던 곳은 월남전쟁의 실상이 상세히 전시되어 있는 전쟁박물관이었다. 진시된 사진 중에는 미국 군인들이 베트콩의 시신부분을 웃으면서 들어 올리는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미국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 설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그들의 옆에 바싹 다가가서 얼굴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감회가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시장의 좌판 음식점에서 베트남의 전통음식을 시식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이름도 알 수 없었지만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고를 수가 있었다. 물을 달라고 하니 밦값보다 더 많은 돈을 달라고 해서 꾹 참으면서 밥을 먹다가 옆에 앉아 있던 주인 아들과 어렵게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가 가져간 관광열쇠고리 한 개를 주니까 물을 큰 그릇으로 한 그릇 가져와 주었다. 아무튼 고마워서 등을 두드려주면서 식사를 끝냈다.
 
메콩텔타 탐방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메콩텔타 탐방을 예약한 중심가의 프린스호텔 로비로 갔다. 여행사 직원이 호텔들을 돌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 들을  모아서 팀을 만들고 있었다. 모집된 관광객들이 주로 호주 인들이었기 때문에 호주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무척 반가웠다.
메콩텔타는 메콩 강 하류에 형성된 삼각주를 말하는데 홍수범람의 영향을 받아 땅이 비옥하여 각종 농작물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이다. 삼각주에 형성되어 있는 정글 속의 강을 따라 한참을 가니 유니온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아름답게 꾸며놓은 정원에는 꽃들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우리는 그곳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열대과일을 시식했다.
오늘은 구찌터널탐방 팀에 합류했다. 팀 멤버는 한국인인 나, 일본인들, 브라질 인들로 구성되었다. 호치민시티를 벗어난 시골길에도 오토바이으 물결이 길을 메웠다. 오토바이 물결은 베트남의 상징적 존재임이 새삼 느껴졌다. 길 옆의 라이스페이퍼(rice Paper) 공장에서는 쌀가루반죽을 얇게 펴서 증기로 쪄 내는 모습이 무척 익숙해 보였으며, 옆에서 구경하는 아이들에게 하나를 집어주는 후한 인심도 보여주었다.
구찌터널에 도착했다. 안내인의 설명에 따라 터널의 구조를 영상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단순한 땅굴로만 생각했는데 구조의 모형이 개미굴과 흡사했다. 이러한 땅굴에서 신출귀몰하면서 싸움을 했다니 상대방의 어려움이 상상되었다.
안내인을 따라 일부 개방된 땅굴을 찾아갔다. 땅굴의 입구를 찾아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안내인이 정해준 범위ㅓ안에서 땅바닥을 쓸어가면서 한참 찾으니 희미한 흔적이 나타났다. 덮게르 ㄹ열어보니 그 입구는 약 25cm x 35cm 정도의 베트콩 사람들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크기여서 몸집이 큰 사람들은 입구에서부터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굴의 내부도 허리를 굽히고  쭈그려서 통과할 수 있는 정도였다.
굴 안에는 작전회의실, 의무실, 취사실 등이  있었는데, 특히 취사실의 구조는 특이했다. 취사를 할 때 생기는 연기를 흡수하기 위해서 굴뚝을 길게 파서 땅위로 뽑았는데 굴뚝 끝 땅 표면은 넓은 바위로 위장 하여 바위 둘레를 돌아가면서 작은 구멍들을 뚫어서 미처 땅에 흡수되지 않은 연기가 분산되도록 해 놓았다. 지하에 있는 그 당시 식당에서 그들이 먹던 따삐오까라는 음식을 먹어 보았다. 땅굴을 돌아보면서 그들의 불굴의 정신을 실감했고, 베트콩이 승리할 수 있었던 그 때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호치민시티로 돌아오는 길, 하루를 함께 한 여러나라 사람들과 우정이 교환되는 시간이었다. 흥미로웠던 하루의 일들과 자기 나라에 관한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돌아왔다.
 
호치민시티 2차 방문(2000)
카오다이즘(Caodism)
친구들과 함께 캄보디아를 탐방한 후 다음 여정으로 호치민시티를 방문했다. 아침 일찍 꾸찌터널로 방향을 잡았다. 베트남전쟁에서 베트남에 승리를 안겨주는데 크게 기여한 꾸찌터널을 방문한 후 우리는 베트남의 고유 종교 카오다이즘의 본산이 있는 타이닌으로 향했다. 교외의 시골길을 한참동안 달렸다. 여름철 우기인데 생각보다는 덥지 않았다. 교외의 길을 가면서 중간 중간 멈추어서 베트남의 시골의 풍물에도 접해보았다. 길가 열대과일 가게에 내려서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열대과일들을 시식을 했다. 과일가게에서 우리 단원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우리말로 농담을 받아주어서 놀라기도 했다.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실감했다. 계속 달려서 카오다이즘 의식이 행해지는 12시 가까이에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의 건물양식은 특이 했다. 사원은 동남아 스타일의 건물양식에 북방불교사원의 사찰양식을 가미시킨 화려함과 육중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뜰에다 신발을 벗어두고 경내로 들어가니 넓은 경내에서는 스님들과 신도들이 특이한 종교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카오다이즘은 베트남의 고유 종교로서 유불선(儒佛仙)이 종합된 종교에 가까웠다.
저녁시간에는 베트남에서의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이곳의 일반 시민들이 즐겨 찾는 카페로 갔다. 낮과는 달리 밤에는 제법 시원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깊어가는 남국의 밤의 정취를 젖어들었다. 외국인이기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정성껏 대해주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말로는 의사를 통할 수가 없어도 마음으로 통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주고 받았다. 표정과 몸짓으로도 의사소통이 막힐 때에는 서로의 감정을 주고 받았다. 표정과 몸짓으로도 의사소통이 막힐 때에는 약간의 스릴을 느끼기도 했다. 호기심의 눈빛으로 벗이 되어 주던 아름다운 미소가 아련한 모습이 되어 베트남여행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메콩텔타
오늘은 돌아가는 날이다. 귀로의 항공시간이 자정이기 때문에 항공시간에 맞춰서 일정을 짰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짐을 싸서 체크아웃을 하고 짐은 호텔에 맡겨두고, 아침식사를 하자마자 미토의 메콩델타로 향했다. 메콩델타의 정글탐험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이공강의 선상 뷔페
저녁식사는 사이공강 선상 레스토랑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사이공 강변에 도착하니 네온사인을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커다란 뷔페레스토랑 배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배에 승선해서 무대 가까이에 예약된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은 후에 2층으로 올라가서 사이공강의 야경을 내려다보니 남국의 정취가 피부로 느껴졌다. 곧 식사가 나오고 무대에서는 여흥이 시작되었다. 시간의 흐름이 아쉬웠다. 꽁까이(베트남어로 아가씨)들의 노래 소리는 사이공강의 밤을 간드러지게 흔들었고, 틈틈이 우리도 여흥에 참여해서 분위기를 돋우었다. 추억의 밤이 었다.
저녁 9시경 우리는 그곳을 떠나 호텔에 들러서 맡겨둔 짐들을 가지고 공항으로 향했다. 추억의 시간들을 가슴에 간직하면서 다시올 기약도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출처 : 김병무교수의 "테마별 세계여행기" 중에서 베트남편